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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연애, 나는 왜 맨날 서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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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라상의 김도윤 상담사입니다. 지난 16년 동안 5만 7천 명, 잠실야구장을 두 번 가득 채우고도 남는 사람들의 재회와 연애를 도와드렸네요. 오늘은 철학자 시리즈 2편으로 돌아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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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연애에 대해 얘기하기 전 재밌는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갑질하는 사람이 있어야 을이 생기는 게 상식인데, 희한하게 사연을 들여다보면 '갑'이 없는 을의 연애가 많습니다. 왜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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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냥 너무 사랑을 주고 싶었을 겁니다. 내 시간과 감정을 다 쏟아붓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죠. 상대에게 그만큼 돌아오지 않고있다는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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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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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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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을'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면 답장이 조금만 늦어도, 데이트에 덜 신나 보여도, '역시 나만 좋아하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작 상대는 아무 의도 없이 한 행동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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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서운함을 혼자 삼키면 그나마 다행인데, 결국 상대에게 다 털어놓습니다. 가만히 있던 사람은 황당하죠. 처음 몇 번은 달래주지만, 반복되면 반박이 시작되고, 싸움이 되고, 상대는 지쳐서 마음이 식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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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별하고도 마지막 생각은 이겁니다. '역시 난 을이라서 차였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상대는 헌신을 요구한 적도, 갑 노릇을 한 경우도 많이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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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누가 여러분을 을로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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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다음엔 덜 좋아하세요"라고 답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마음의 크기는 조절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를 2천 년 전에 이미 풀어버린 사람을 모셔왔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을'이었을 2편의 주인공, 본투비 노예로 태어난 철학자 에픽테토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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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테토스는 로마 시대 철학자인데, 출발점이 남들과 좀 다릅니다. 언뜻보면 테토스러운 이름이지만 사실은 노예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름 '에픽테토스'부터가 그리스어로 '얻어진 자', 그러니까 '소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조차 자기 것이 아니었고, 주인에게 다리를 다쳐 평생 절뚝이며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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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시간도, 이름도 전부 남의 것. 갑을로 치면 인생 전체가 을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훗날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스승으로 삼을 만큼, 누구보다 자유롭고 평온한 철학자가 됐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을이었던 사람은 어떻게 황제의 스승, 갑중의 갑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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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은 그가 남긴 첫 문장에 다 들어있습니다.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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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한 줄로 을의 연애를 해부해보겠습니다. 힌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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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에너지의 방향

에픽테토스는 세상 모든 일을 딱 2개로 나눴습니다. 내 손에 달린 것과 안 달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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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판단, 내 행동, 내 태도는 전자.

- 타인의 마음, 타인의 반응, 과거는 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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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상담하며 확인한 을의 연애 공통점은 에너지의 90%를 '내 손에 없는 것'에 쏟는다는 것입니다. "왜 답장이 늦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왜 나만큼 안 해주지". 전부 상대 손에 있는 것들이죠. 내 손에 없는 것을 붙잡으려 할수록, 관계의 주도권은 그걸 쥔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결국 을이 되는 건 더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에너지의 방향이 틀려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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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였던 에픽테토스는 반대로 했습니다. 몸의 자유는 주인 손에 있으니 붙잡지 않았고, 생각의 자유는 자기 손에 있으니 그것만 지켰습니다. 그러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노예를, 주인이 어쩌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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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같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붙잡으려는 사람이 을이 되고, 자기 손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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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고통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에서 온다

에픽테토스의 두 번째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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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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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답장이 늦었다고 생각해봅시다. '3시간 뒤 답장'이라는 사건 자체는 그냥 정보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건 그 뒤에 붙는 해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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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늦다 = 나에게 소홀하다 = 역시 나만 좋아한다 = 나는 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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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석의 사슬이 3초 만에 완성되면서 지옥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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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연애를 하는 분들은 늘 최악을 골라 스스로를 찌릅니다. 억지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건 사실이 아니라 내 해석이다"라고 구분만 해도 고통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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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서운함 축적과 감정 폭발과 싸움은 전부 이 구분을 못 해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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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실전 적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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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로 쓸 수 있는 팁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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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서운함이 올라올 때 종이에 두 칸을 그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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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엔 '내 손에 있는 것', 오른쪽엔 '내 손에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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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려는 행동이 오른쪽 칸을 움직이려는 시도라면(답장 재촉, 마음 확인, 서운함 표출), 그 행동은 하기 전부터 을의 행동입니다. 이건 부정적인 생각 습관이 끊어질때까지 계속 하시는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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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해석에 이름 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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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날 안 사랑해"가 아니라 "나는 지금 늦은 답장을 무관심으로 해석하고 있다"로 문장을 바꾸세요. 1편의 관조와 같은 원리입니다. 이름이 붙는 순간 해석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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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표출 대신 기록. 털어놓고 싶은 서운함은 일단 상대가 아니라 메모장에 쓰세요. 3일 뒤 다시 읽어보면 압니다. 그게 정말 대화가 필요한 문제였는지, 내 해석이 만든 문제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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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테토스식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갑을은 사랑의 크기가 정하는 게 아니라, 누가 상대의 반응에 매달리느냐가 정합니다. 그러니 오늘 글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갑이 없는데 을이 존재하는 이유. 상대가 여러분을 을로 만든 게 아니라, 내 손에 없는 것을 붙잡으려는 순간 스스로 을이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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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말하면 스스로 된 을은, 스스로 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답장이 늦어도 내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 여유가 말과 행동에 배어날 때 상대는 불안이 아니라 여유를 읽고, 프레임은 그러면서 회복됩니다. 지금 연애 중인 분도, 이별 후 재회를 준비하는 분도 순서는 같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내 손에 있는 것부터 되찾아봅시다. 노예로 태어나 황제의 스승이 된 사람의 방법이라면 밑져야 본전이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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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서는 니체를 데려오겠습니다. "고통이 너를 죽이지 못하면 더 강하게 만든다"던 그 남자가, 이별의 고통 앞에서 어떤 처방을 내리는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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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이 재미있었다면 좋아요와 댓글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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