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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연애, 나는 왜 맨날 서러울까?
아트라상
2026. 08. 21
아트라상의 김도윤 상담사입니다. 지난 16년 동안 5만 7천 명, 잠실야구장을 두 번 가득 채우고도 남는 사람들의 재회와 연애를 도와드렸네요. 오늘은 철학자 시리즈 2편으로 돌아왔습니다. ^^
을의 연애에 대해 얘기하기 전 재밌는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갑질하는 사람이 있어야 을이 생기는 게 상식인데, 희한하게 사연을 들여다보면 '갑'이 없는 을의 연애가 많습니다. 왜그럴까요?
처음엔 그냥 너무 사랑을 주고 싶었을 겁니다. 내 시간과 감정을 다 쏟아붓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죠. 상대에게 그만큼 돌아오지 않고있다는걸 말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입니다.
내가 더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지.
스스로에게 '을'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면 답장이 조금만 늦어도, 데이트에 덜 신나 보여도, '역시 나만 좋아하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작 상대는 아무 의도 없이 한 행동인데요.
그리고 그 서운함을 혼자 삼키면 그나마 다행인데, 결국 상대에게 다 털어놓습니다. 가만히 있던 사람은 황당하죠. 처음 몇 번은 달래주지만, 반복되면 반박이 시작되고, 싸움이 되고, 상대는 지쳐서 마음이 식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렇게 이별하고도 마지막 생각은 이겁니다. '역시 난 을이라서 차였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상대는 헌신을 요구한 적도, 갑 노릇을 한 경우도 많이 없다는 겁니다.
그럼 대체 누가 여러분을 을로 만들었을까요?
이 질문에 "다음엔 덜 좋아하세요"라고 답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마음의 크기는 조절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를 2천 년 전에 이미 풀어버린 사람을 모셔왔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을'이었을 2편의 주인공, 본투비 노예로 태어난 철학자 에픽테토스입니다.

에픽테토스는 로마 시대 철학자인데, 출발점이 남들과 좀 다릅니다. 언뜻보면 테토스러운 이름이지만 사실은 노예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름 '에픽테토스'부터가 그리스어로 '얻어진 자', 그러니까 '소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조차 자기 것이 아니었고, 주인에게 다리를 다쳐 평생 절뚝이며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몸도, 시간도, 이름도 전부 남의 것. 갑을로 치면 인생 전체가 을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훗날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스승으로 삼을 만큼, 누구보다 자유롭고 평온한 철학자가 됐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을이었던 사람은 어떻게 황제의 스승, 갑중의 갑이 되었을까요?
비결은 그가 남긴 첫 문장에 다 들어있습니다.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오늘은 이 한 줄로 을의 연애를 해부해보겠습니다. 힌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에너지의 방향
에픽테토스는 세상 모든 일을 딱 2개로 나눴습니다. 내 손에 달린 것과 안 달린 것.
- 내 판단, 내 행동, 내 태도는 전자.
- 타인의 마음, 타인의 반응, 과거는 후자.
16년간 상담하며 확인한 을의 연애 공통점은 에너지의 90%를 '내 손에 없는 것'에 쏟는다는 것입니다. "왜 답장이 늦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왜 나만큼 안 해주지". 전부 상대 손에 있는 것들이죠. 내 손에 없는 것을 붙잡으려 할수록, 관계의 주도권은 그걸 쥔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결국 을이 되는 건 더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에너지의 방향이 틀려서입니다.
노예였던 에픽테토스는 반대로 했습니다. 몸의 자유는 주인 손에 있으니 붙잡지 않았고, 생각의 자유는 자기 손에 있으니 그것만 지켰습니다. 그러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노예를, 주인이 어쩌지 못하게 됩니다.
연애도 같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붙잡으려는 사람이 을이 되고, 자기 손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쥡니다.

둘째, 고통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에서 온다
에픽테토스의 두 번째 문장입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생각이다.
예를 들어 답장이 늦었다고 생각해봅시다. '3시간 뒤 답장'이라는 사건 자체는 그냥 정보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건 그 뒤에 붙는 해석이죠.
"답장이 늦다 = 나에게 소홀하다 = 역시 나만 좋아한다 = 나는 을이다".
이 해석의 사슬이 3초 만에 완성되면서 지옥이 시작됩니다.
을의 연애를 하는 분들은 늘 최악을 골라 스스로를 찌릅니다. 억지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건 사실이 아니라 내 해석이다"라고 구분만 해도 고통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즉 서운함 축적과 감정 폭발과 싸움은 전부 이 구분을 못 해서 시작됩니다.
셋째, 실전 적용법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로 쓸 수 있는 팁을 드리겠습니다.
1단계, 서운함이 올라올 때 종이에 두 칸을 그리세요.
왼쪽엔 '내 손에 있는 것', 오른쪽엔 '내 손에 없는 것'.
지금 하려는 행동이 오른쪽 칸을 움직이려는 시도라면(답장 재촉, 마음 확인, 서운함 표출), 그 행동은 하기 전부터 을의 행동입니다. 이건 부정적인 생각 습관이 끊어질때까지 계속 하시는게 좋습니다.
2단계, 해석에 이름 붙이기.
"쟤는 날 안 사랑해"가 아니라 "나는 지금 늦은 답장을 무관심으로 해석하고 있다"로 문장을 바꾸세요. 1편의 관조와 같은 원리입니다. 이름이 붙는 순간 해석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깁니다.
3단계, 표출 대신 기록. 털어놓고 싶은 서운함은 일단 상대가 아니라 메모장에 쓰세요. 3일 뒤 다시 읽어보면 압니다. 그게 정말 대화가 필요한 문제였는지, 내 해석이 만든 문제였는지.

에픽테토스식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갑을은 사랑의 크기가 정하는 게 아니라, 누가 상대의 반응에 매달리느냐가 정합니다. 그러니 오늘 글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갑이 없는데 을이 존재하는 이유. 상대가 여러분을 을로 만든 게 아니라, 내 손에 없는 것을 붙잡으려는 순간 스스로 을이 된 겁니다.
뒤집어 말하면 스스로 된 을은, 스스로 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답장이 늦어도 내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 여유가 말과 행동에 배어날 때 상대는 불안이 아니라 여유를 읽고, 프레임은 그러면서 회복됩니다. 지금 연애 중인 분도, 이별 후 재회를 준비하는 분도 순서는 같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내 손에 있는 것부터 되찾아봅시다. 노예로 태어나 황제의 스승이 된 사람의 방법이라면 밑져야 본전이지 않을까요? ^^
다음 편에서는 니체를 데려오겠습니다. "고통이 너를 죽이지 못하면 더 강하게 만든다"던 그 남자가, 이별의 고통 앞에서 어떤 처방을 내리는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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