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상담 후기
고프저신 / 확률 70% / 1차 지침 전
피에이치디
2022. 03. 08
안녕하세요 하서영 상담사님께 상담을 받은 소이입니다. 내담자 중 자존심이 가장 강하고, 신뢰도가 여태 본 여성 내담자 중 가장 낮은 사람이라는 객관적 평가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팩폭과 잔소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 주셨지만, 저는 읽으며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마음이 오히려 따뜻해지고 눈물도 났어요. 기쁘다고 해야 할까요?
상대방에게 나는 걸맞는 사람이 아니야. 상대는 나보다 더 좋은 집안, 이쁘고 어린 여자를 만나고도 남아.
저는 그런 무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제가 초고프 성향에 상대에겐 고프레임, 실제로도 객관적 가치가 높다고 들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신뢰도가 막장인 건 이미 아는 사실이었고요.
상대방이 저를 절박하게 사랑했다고 표현해주어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게 왜 이리도 위안을 주는 걸까요.
상대의 후폭풍은 저 역시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보다 힘들어하는 게 보인다는 말에 아, 역시 그렇구나. 납득했습니다.
단지 지침을 놓고 한참을 망설였네요. 아직 지침을 보내기까지 2주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저는 상대와의 재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곱씹을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인데, 왜 자꾸 상대가 꿈에 나오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중모션은 지금 제가 더 격렬하게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뭐랄까요… 음… 저는 이 관계에서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 처음부터 명확히 인지했습니다. 그걸 객관화해서 들으니 너무 재밌어서 웃음이 났었어요. 전 정말 상대를 좀 무시했기 때문에(저는 상대를 경멸했습니다. 죽도록 사랑하면서도) 학대하듯 대한 것도 맞아요.
왜 경멸했냐고 물으신다면 모르겠습니다. 과거가 난잡하다고 느꼈나봐요. 맨날 전여친 얘기를 하니까 정이 떨어졌었어요. 말씀 주셨듯 저는 통제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고, 질투 소유욕도 미쳤습니다. 조신한 남자가 좋은데 얘는 정말 과거가 화려했거든요.
게다가 상대가 원하는 “와이프” 상은, 어리고 예쁘고 똑똑하고 순수하고 착하고 프/신 관리가 완벽한 그야말로 완벽한 여자라고 저는 사귀는 내내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나본 남자 중 눈이 거의 하늘에 닿아있다고 느꼈고, 솔직한 말로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게 너무 화가 났어요.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니까……. 나는 막상 상대 돈 많아서 좋아하고 있는데. 집안 학벌 조건 다 따져서 좋아하고 있는데.
상대는 내게 너무 순수하고 올곧게 사랑을 주는 느낌이었고, 나 같은 여자가 이런 순수한 사람에게 과연 어울릴까. 나처럼 세속적으로 다 따져서 만나기 시작한 애가 가당키나 할까. 만나다보니 상대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게 된 건 사실이지만, 내가 나를 아는데. 가난했으면 애초에 만나지도 않았을 남자가 맞는데. 이런 생각들이요.
상대가 주는 애정이 커질수록 오히려 죄책감을 느꼈고, 상대가 행복하길 바랄수록 나를 떠나길 원했던 거 같아요. 객관적으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격차가 나고 있다, 저는 그렇게 느꼈었습니다. 상대가 종종 저랑 결혼하면 제가 신분상승하는 거다, 구원받는 거다, 라고 말해서 제가 빡쳤던 것도 있고요.
그랬기에 고프레임이라고 객관적 가치가 높아 막장으로 굴었어도 연애가 이어진 거라고 단언하실 때, 그런가. 나도 괜찮은 사람일까. 하면서 위안을 오히려 받고 말았네요. 누구보다 센 척하고 자존심 강한 제가 사실은 이런 속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상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겠죠.
놀랍게도 저는 여태 모든 연애에서 청혼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이번 케이스만 예외였죠. 신뢰도 관리는 언제나 최악이었는데도 그랬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전남친들에게 상당히 미안하긴 하네요. 저 같은 막장 저신뢰도를 만나고도 청혼까지 했는데, 사실 정작 저는 결혼 관문을 통과하면 상대에게 흥미를 잃어버리는 인지왜곡 방어기제가 있었습니다.
-너도 나한테 청혼하네, 너도 별 거 없네.
-뭘 안다고 결혼하재?
-나 같은 정신상태 여자는 결혼해봤자 이혼인데 그걸 간파하지 못해? 난 결혼할 정신상태 되려면 몇 년은 더 걸려.
뭐 이런 생각을 했달까요 ;;
그래서 오히려 결혼에 회의적으로 구는 전남친이 좋은가봐요. 오랜만에 가치가 매우 높은, 제정신인 남자로 보였거든요. 그리고 저는 정말 인지왜곡이 심한 것이. 전남친이 청혼을 했더라면 오히려 흥미를 잃고 바로 이별 통보를 했을 겁니다. 오빠 전여친들한테 매번 결혼 가지고 갑질했었지, 한번쯤 당해봐라. 전여친 대신 복수다. 이러면서요; 죄송합니다. 읽으면서 혀 차실 것 같지만 제 왜곡된 인지가 그렇게 흐르네요.
-정말 이 사람이 내가 만날 수 있는 남자 중에 가장 가치가 높은 사람인가? 사랑 같은 달달한 소리 집어치우고 객관적으로도 그러한가?
라는 생각을 항상 머릿속에 돌리며 삽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확신을 아직 어떤 남자한테서도 경험해보질 못했던 것 같아요.
대체자인 현재 남자친구에겐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프/신 관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 달밖에 안 되서 유지하는 걸 수도 있지만 한 번도 화내지 않았는데도 제가 원하는 모든 데이트종류와 선물을 받고 있습니다. 결혼 전제라는 안정감도 강하고요.
현남친도 제 타고난 성향 탓에 객관적 가치는 높지만 자존심이 없다시피 한 매우 순한 타입의 남자입니다. 제 맘대로 굴 수 있어서 편하고 좋고 맘에 들어요.
제가 결혼이 되려면, 전 정말 신뢰도를 높이고, 가혹한 연애방식은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결혼에 적합하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에 애꿎은 남자 인생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독신을 유지해야 한단 생각이 강했었거든요.
상대를 평생 행복하게 하면서, 이혼할 확률이 없을 것이라고 제가 확고하게 느끼지 않는 이상 저 역시 결혼을 할 성격이 아닙니다. 결혼 제도에 대한 책임감이 어쩌면 누구보다 강하고 강박까지 있습니다. 상대가 만날 수 있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여자가 나다. 라는 확신이 들어야 하는 것도 있어요.
말하다보니 상대를 학대하는 연애방식은 오히려 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상대가 힘들어하는 게 저는 더 고통스러우니까.
사실은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그 어떤 여자보다도 잘, 하면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상대가 평생 후회하지 않으며 절 선택했음에 행복해하길 바랍니다.
어렵네요. 저 정말 많이 바뀌어야겠군요.
재회가 되든 되지 않든, 제 미래 남편 될 사람이 더는 저로 인해 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쓴소리라 해주셨지만 저를 위한 소리였음을 알고 가슴 깊이 감사해요.
또 후기 쓰러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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